나의 신앙생활

자타카의 보살

이원도 2022. 3. 13. 10:48

자타카의 보살

 

자타카(Jātaka)’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 혹은 이를 모아 놓은 문헌으로서, 본생(本生)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것은 4종의 니카야나 또는 4종의 아함으로 불교경전이 부파에 따라 편찬되기 이전의 불전의 분류방법으로 알려진 구분교(九分敎)나 십이분교(十二分敎)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성립연대가 오래되었다고 보인다. 상좌부 삼장에서 자타카는 경장을 구성하는 5부 중의 마지막 쿠다카니카야(Kuddaka-Nikāya)에 포함되는데, 대략 BCE. 300년에서 CE. 400년까지 편찬되었다고 보인다. 그것은 약 547개의 운문게송으로 이루어졌고 게송의 숫자에 따라 편찬되었으며, 후대에 산문주석이 추가되었다. 자타카는 과거세에서 각각 세존의 죽음과 재생들 속에서 보살행과 난행이 설명된 것으로서 이와 비슷한 내용이 비유문학(Avadāna)이나 마하바스투(大事) 등에 산재되어 나타난다. 마하바스투에서 자타카에 능숙한 붓다께서 보살행을 설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타카의 내용은 크게 () 불교외부의 스토리에 의거해 이를 불교식으로 각색한 것과, () 불교 내부의 일화를 편집한 것으로 구분될 수 있다. ()에는 당시 인도 사회에 퍼져 있던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설화나 우화들이 속한다. 그것들은 판차탄트라나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혹은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스토리를 각색한 것으로, 고대 인도문화에서 널리 알려진 서사를 공유하고 있다. 다사라타자타(Dasarathajātaka, no.461)에서 석가모니의 전생인 라마판디타(Ramapandita) 보살이 왕자였을 때 아버지 다사라타는 계모가 그를 죽이려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를 12년간 망명을 보냈다. 그는 동생들과 망명을 떠났는데, 9년 후에 왕이 죽고 계모는 그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어린 그는 적당한 왕위계승자가 라카판다타라고 생각해서 이를 거절한다. 망명처에서 부왕의 사망소식을 들은 다사라타는 그렇지만 귀국하지 않고 계속 왕의 명령에 따라 3년을 더 머문 후에 귀국해서 왕위에 올라 왕국을 잘 다스렸다는 이야기다. 라마야나(Rāmāyaṇa)에서 부왕과 동생들의 이름도 동일하며 망명했다는 소재도 동일하기에 독자들은 쉽게 라마야나의 스토리를 각색한 것임을 알 수 있지만, 여기서의 주제는 라마야나와는 달리 무상성과 복종이다.

 

반면에 ()는 붓다가 승단 내부의 문제나 계를 어긴 승려들을 위해 자신의 전생이야기를 소재로 훈계하는 경우이다. 티티라자타카(no.37)에서 새와 원숭이, 코끼리가 연장자를 존중함으로써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상좌부의 율장의 설명에서 붓다는 이 이야기를 나이든 비구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서로 싸우는 비구들에게 설했다고 한다. 여기서의 주제는 장로들의 지혜를 존중할 때 화합이 온다는 것이다. 이 자타카는 붓다가 전생의 새였고, 대목건련과 사리불이 각기 코끼리와 원숭이였다고 말한다.

 

위에서는 단지 두 개의 경우를 보았지만, 이를 통해서도 자타카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넓게 승가공동체의 평화나 또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덕성의 계발과 같이 불교가 기본적으로 중시한 요소들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이고 세간적인 행복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으로 설해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 덕성과 사회적 공덕의 성취를 위해 자타카가 요구하는 것이 바로 바라밀의 실천이다. 바라밀(pārāmitā)은 도피안(到彼岸) 또는 완덕(完德)으로 번역되는데, 우리가 잘 아는 6종이나 10종의 바라밀이다. 그중 자타카가 애용하는 것은 보시바라밀과 인욕바라밀이다. 보시바라밀은 보시에 의한 도피안이나 또는 보시의 완성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으로 불교교설에서 보시나 지계 또는 인욕 등의 행위는 비록 선한 것이지만, 열반으로 인도하지는 못하고 단지 선업에 따른 좋은 재생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그런데 보시가 보시바라밀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어떤 행위가 그 행위의 완성이나 그 행위를 통해 궁극적인 것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이다. 이에 대해 시비자타카는 시비왕과 비둘기의 경우를 들어 자신의 생명조차 다른 중생의 행복을 위해 보시할 때, 그것이 바로 보시바라밀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시의 완성은 베싼타라자타카에서 베싼타라왕이 왕국을 버리고 마침내 아이와 처까지도 보시한다는 것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 서사가 보여주는 것은 어떤 집착도 없이, 그리고 어떤 대가도 기대함이 없이 타인에게 보시할 때 그런 보시야말로 보시의 완성이며 완전한 열반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바라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서사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불교도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고 보인다. 적어도 BCE. 2세기 중반에 건축된 바르후트 불탑에서 자타카라는 이름의 조각이 상당수 존재하며, 그 이야기들은 자타카나 다른 불전문학 등에 나타나는 석가모니의 전생이야기와 동일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런 스토리들이 불교도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은 이후 이를 소재로 한 벽화나 부조가 수많은 석굴사원이나 탑에 새겨져있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시비왕의 이야기는 아잔타 동굴의 벽화로 새겨져 있거나 남인도, 나아가 중국의 북위시대의 석굴에서도 발견된다.

 

이런 종류의 서사는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종교적 열정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승원에서 자타카 이야기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는 자타카를 전문으로 낭송하는 낭송자(bhāṇaka)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낭송자는 예를 들어 장부나 중부 등의 니카야를 전문으로 낭송하는 일군의 훈련받은 승려였을 것이다. 자타카 낭송자의 존재는 자타카가 불교승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그것은 자타카의 서사적 측면에서 볼 때, 불교승려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벽화나 부조에서 보듯이 재가자를 위한 불교교육의 측면이 많다고 보인다. 더구나 자타카 낭송자의 존재는 자이나교나 다른 바라문 문헌에서는 언급되지 않기에 불교에 고유한 것이다.

 

자타카가 재가자를 의도한 가르침이라는 점은 쿠루담마자타카(no.276)에서 초기불교 이래 재가자를 위한 계율로서 5계가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 잘 나타나있다. 이런 사회적 공덕의 강조는 세상을 보호하는 법을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설명하는 자타카(no.6)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와 같이 서사의 대상은 엘리트 승려가 아니라 주로 재가자였다. 그 목적은 이런 서사를 통해 민중들에게 붓다의 전생의 행위를 본받아 현실세계에서 스스로 공덕을 실천하고 쌓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당시 재가자들에게 이는 얼마나 멋지고 감동적인 이야기였겠는가!

 

글쓴이 : 안성두 서울대 철학과 교수 sdahn@snu.ac.kr

 

<출전 : 1623/ 202239일자 / 법보신문>

 

'나의 신앙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려야 하는 세 가지22년3월19일자>  (0) 2022.03.22
편견을 깨야 행복해진다  (0) 2022.03.17
괴로움의 성찰  (0) 2022.03.05
불교의 우주구조설  (0) 2022.03.03
내 생각과 같은 사람  (0) 2022.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