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그네가 들판을 지나가다 코끼리에게 쫓기게 되었다. 마침 언덕에 큰 나무 한그루가 있었고, 그 나무 밑에 우물이 있었다. 다행히 등 넝쿨이 아래로 뻗어있어 이를 잡고 내려가던 중 우물바닥에 독사 세 마리가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우물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데,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위에서 등 넝쿨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른 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인 것이다. 그 와중에 나그네는 벌집에서 떨어지는 다섯 방울의 꿀을 받아먹으며 자신의 상황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는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안수정등(岸樹井藤)’의 화두이다.
그렇다면 이 나그네는 어떻게 해야 이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대가 이 나그네와 같은 처지라면 과연 어찌해야 할까?
첫째, 자신의 상황을 직관해야 한다. ‘아바타가 단꿈에 빠져있구나!’ 둘째, 관찰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하반야바라밀!’ 셋째, 색즉시색(色卽是色)으로 바라본다. ‘다만 바라볼 뿐!’
애당초 이러한 상황은 모두 설정이다. 현실이 아닌 허구인 것이다. 이른 바 ‘가상현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사실은 진짜 가상현실이라면?
윤회하는 삶은 모두 가상현실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윤회로부터 벗어난 해탈이 진실이다. 그러므로 오욕락의 단꿈을 이루고자 애쓸 것이 아니라, 꿈을 깨는 것이 급선무다.
세상은 온통 꿈을 권장한다. 마치 어떤 꿈이 이루어지면 진정한 행복이 오리라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꿈은 연속해서 되풀이된다. 한 꿈이 이루어지더라도,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죽어라 돌린다. 윤회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탈의 첫 번째 비결은 먼저 모든 걸 ‘꿈’ 혹은 ‘아바타’라고 직관하는 것이다. “아바타가 ‘이 뭐꼬?’ 화두를 들고 있구나!” 두 번째 비결은 관찰자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관찰자는 크고 밝고 충만하다. 이른 바 “마하반야바라밀!”인 것이다. 마지막 비결은 매사를 ‘색즉시색’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혜안으로 보면 ‘색=공’이다. 법안으로 보면 ‘공=색’이다. 불안(佛眼)으로 보면 ‘색=색’이다. “산은 산· 물은 물!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 삼삼은 구요, 구구는 팔십일이다!” 이를 온 몸으로 사무쳐야 비로소 세상에 선포할 수 있다.
“나왔다!”
[출전 : 불교신문 3730호/2022년8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