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생활

몸과 마음

이원도 2022. 7. 29. 16:45

붓다는 ‘나’라는 존재를 오온(五蘊)으로 보았다. 색온(色蘊)·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蘊)이라는 다섯 가지 무더기가 쌓인 것이 ‘나’라는 것이다. 넓혀서 보면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가 오온이다. 오온은 살아있는 존재의 물질적 요소[色蘊]에, 그 존재가 인식대상을 만났을 때 생겨나는 느낌[受蘊], 인식[想蘊,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의도[行蘊, 대상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고자 하는 의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성되는 분별하는 마음[識蘊]이다.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는 생명이 없다. 붓다는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나의 몸에 마음이 생긴다고 보았다. 결국 붓다는 ‘나’를 ‘인식하는 존재’로 정의하였다.

‘마음과 몸이 서로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을 심신문제(心身問題)라고 하는데, 이는 오랜 세월 동안 논란거리였다. 이 문제는 현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년~322년)는 인간의 마음이 따뜻한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동물의 뇌를 방열기관이라고 생각했다. 뇌는 쭈글쭈글하게 생겨 열을 잘 발산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옛 이집트인들도 감정과 기억, 지혜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뇌가 아니라 심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보관한 것도 심장이었다. 뇌는 필요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내버렸다. 옛 중국에서도 심장은 ‘마음을 담당하는 장부[心腸]’로 여겨졌다. 마음 ‘心’ 은 심장의 생김새에서 유래한 것이다.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심장이 사람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임상사례가 나온다. 두 남자의 심장을 심장이식 수술로 바꾸어 놓으니 서로 집을 바꾸어 찾아가고, 처자식도 바꾸어 알더라는 것이다. 그 시대에 심장이식 수술을 했을 리 만무한 중국인 특유의 허풍이지만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면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기원전 약 460~370년)는 마음이 머무르는 곳을 심장이 아닌 뇌라고 생각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마음이 뇌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면 뇌와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일까? 

17세기에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마음이라는 실체와 뇌라는 실체가 따로 존재한다고 하는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을 물질적 실체[몸]와 정신적 실체[영혼]의 결합체로 보았는데, 두 상이한 실체는 뇌의 송과체(松果體)에서 만나 마음을 만든다고 믿었다. 반면 단일론(單一論, Monoism) 혹은 물질론(Physicalism)은 마음과 몸(뇌)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체라고 본다. 뇌의 어느 부위가 마음이라는 물체라는 것이다. 즉 뇌에 대뇌, 소뇌, 숨뇌 등이 있듯이 마음뇌가 있다고 단일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마음은 뇌의 어느 부위에도 해부학적[즉, 공간적]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는 심신문제를 실체이원론이 아닌 속성이원론(Property Dualism)으로 설명한다. 인간이라는 한 실체 안에 두 가지 속성(Property), 즉 물질적(Physical)인 속성과 정신적(Mental) 속성이 존재하며, 정신적 속성인 마음은 육체적 속성인 뇌의 활성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마음은 뇌의 활성으로 생성된다. 

뇌와 마음의 관계를 전구와 빛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전구에 전류가 흐르면 빛이 들어온다. 전구 속에 있는 텅스텐 필라멘트에 전류가 흐른 결과 빛이 생성되었다. 전구는 뇌, 텅스텐 필라멘트는 뇌의 신경회로에 대비된다[그림참고]. 뇌신경회로[텅스텐 필라멘트]에 전류가 흐르면 마음[빛]이 발생한다. 이처럼 마음[정신적 속성]은 뇌신경회로[몸, 물질적 속성]의 작용이다. 속성이원론이다.

붓다는 속성이원론을 특별히 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를 오온으로 규정한 것은 마음의 창발에 대한 속성이원론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다. 정신[수·상·행·식]이 대상의 인지를 통해서 나의 몸[색]에서 생긴다고 하지 않았는가. ‘상윳따 니까야[雜阿含經]’ ‘낑수까 나무 비유 경(S35:245)’은 마음[알음알이]이 물질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때 동쪽으로부터 재빠른 전령 두 명이 달려와서 그 문지기에게 ‘여보시요 지금 이 도시의 성주는 어디에 계시오?’라고 말하면, 그는 ‘지금 그분은 중앙광장에 앉아 계십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성주’는 알음알이[마음], 중앙광장은 몸을 이루는 네 가지 근본물질[땅, 물, 불, 바람]이니 마음은 물질에 있다는 뜻이다. ‘맛지마 니까야[中阿含經]’ ‘여섯씩 여섯 경(Ml48)’에서 붓다는 더 나아가 눈, 귀, 코, 혀, 감촉, 마노[意]를 통한 6가지 인식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마음이라는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을 통하여 몸이 반응을 할 때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붓다는 몸의 반응이 마음을 창발한다고 설명하였다. ‘나’라는 존재는 물질[色蘊]이기도 하지만 마음[識蘊]이라는 현상을 창발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나’는 물질적 속성과 정신적 속성을 갖는다. 현대의 정신과학의 이론인 마음의 속성이원론을 붓다는 2500여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마음의 괴로움[苦, Dukkha]을 해결할 수 있다. 오온이 의미하듯 마음[識蘊]은 나의 몸이 인식 과정을 거쳐서 생성된다고 붓다는 통찰하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으로 인식과정을 조절하면 마음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마음을 조절한다는 것은 뇌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결국 뇌도 마음에 의존한다. 인식을 조절하여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거기에 맞는 뇌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명상의 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잘 증명되고 있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어떤 마음이 만들어질지가 결정된다. 이는 불교의 핵심문제이다. 청안한 마음을 만드는 것이 불자들의 핵심목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감을 통하여 인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붓다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을 통하여 인식한다고 가르친다. 법경(法境)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의근(意根, mano)을 설정한 것이다. 법경이 의근에 포섭되면 의식(意識)이 된다고 가르쳤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42호 / 2022년 7월27일자 / 법보신문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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