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야기★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극도의 공포감도 가지고 있다.
죽음은 경험한 사람도 없고 어떤 행태인지 알지 못하기에 막연한 두려움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그저 먼 뒷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고있다. 어쩌면 이랗게 사는 게 맞을는지도 모르겠다.
늘 죽음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며 사는 거 보다는 백번 나을 것이다.
많은 선지식들은 죽음은 두려워도 회피하지도 말고 같이 가면서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라고 한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평소에도 그런 마음으로 높고깊은수행을 한다면 누구나 다가오는 죽음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 중에 수년째 신장투석 하는 친구가 있다. 코로나에 걸리면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그로인해 사망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있어서 전화했더니 덤덤하게 웃으며 ' 죽으면 되지 뭐' 라고 말했다.
하긴 수년째 투병중이하라 일부 자포자기 했을 수도 있지만 가끔 전화하면 손녀 봐주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엄청난 역풍이 불 것이다. 인구 폭증으로 인한 재앙, 삶의 의미가 없는데도 억지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역일 것이다. 거기에다 질병과 장애도 겪어야 한다면 정말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공포일게다.
이처럼 죽음은 막연한 공포와 최후의 안식처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다고는 하면서도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거다. 그러나 그 오래가 언제인지 얼마간의 기간인지는 알 수가 없다. 100살이 넘어도 삶에 대한 애착은 있다.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이나 내일에는 죽기가 싫다 그저 막연한 세월에 그 언젠가만 원하고 있다.
200살 넘은 사람에게 내일 죽는다면 바로 받아들일까???
ㅎㅎㅎㅎㅎ.
2021.12.18. 저녁
심심한
현담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극도의 공포감도 가지고 있다.
죽음은 경험한 사람도 없고 어떤 행태인지 알지 못하기에 막연한 두려움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그저 먼 뒷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고있다. 어쩌면 이랗게 사는 게 맞을는지도 모르겠다.
늘 죽음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며 사는 거 보다는 백번 나을 것이다.
많은 선지식들은 죽음은 두려워도 회피하지도 말고 같이 가면서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라고 한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평소에도 그런 마음으로 높고깊은수행을 한다면 누구나 다가오는 죽음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 중에 수년째 신장투석 하는 친구가 있다. 코로나에 걸리면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그로인해 사망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있어서 전화했더니 덤덤하게 웃으며 ' 죽으면 되지 뭐' 라고 말했다.
하긴 수년째 투병중이하라 일부 자포자기 했을 수도 있지만 가끔 전화하면 손녀 봐주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엄청난 역풍이 불 것이다. 인구 폭증으로 인한 재앙, 삶의 의미가 없는데도 억지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역일 것이다. 거기에다 질병과 장애도 겪어야 한다면 정말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공포일게다.
이처럼 죽음은 막연한 공포와 최후의 안식처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다고는 하면서도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거다. 그러나 그 오래가 언제인지 얼마간의 기간인지는 알 수가 없다. 100살이 넘어도 삶에 대한 애착은 있다.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이나 내일에는 죽기가 싫다 그저 막연한 세월에 그 언젠가만 원하고 있다.
200살 넘은 사람에게 내일 죽는다면 바로 받아들일까???
ㅎㅎㅎㅎㅎ.
2021.12.18. 저녁
심심한
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