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생활

지혜와 자비

이원도 2024. 10. 20. 07:21

지혜와 자비는 필요충분조건”


혜인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왕이 물었다. “존자 나가세나여! 당신은 ‘족제비’의 습성에서 한 가지를 배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에 관해 말씀해 주시지요!”

존자가 답했다. “대왕이시여! 예를 들면, 족제비가 해독제를 몸에 바르고 뱀을 잡으러 다가가는 것처럼, 수행자는 성냄과 적대감, 말씨름이나 논쟁, 이론(異論), 반론(反論)을 제멋대로 일삼는 세간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자비의 약을 자신의 마음에 펴 발라야 합니다. 장로 사리풋타는 이런 시구를 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벗에게나 적에게나 평등하게 자비의 수행을 해야 한다. 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세계에 충만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말입니다.”

 “존자시여! 수행자의 자비심은 그와 같아야 한다고 인정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비(慈悲)는 애정하고 딱하게 여겨지는 사람에게 일으키는 마음이다. 애정하는 자를 기쁘게 해 주고 만일 그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자비심이다. 자(慈)는 ‘사랑하다, 어여삐 여기다’라는 뜻이고 비(悲)는 가엽게 여겨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다.

자비심은 대상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마하지관>에 따르면 친한 사람이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것을 광자심(廣慈心), 일반사람들에 대해서 일으키는 자비심을 대자심(大慈心),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일으키는 자비심을 무량자심(無量慈心)이라 한다. 즉 한 방향의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그 사람들이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것은 광자심이고, 사방(四方)의 사람에 대해서는 대자심이고, 시방(十方)의 사람에 대해서라면 무량자심인 것이다.

자비 수행을 할 때에는 이처럼 자비심이 잘 일어나는 대상으로 시작해서 점차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또 <대지도론>에서는, “넓은 마음(廣慈心)이란 죄를 두려워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음속의 삿됨(惡法)을 제거하는 것이요, 큰마음(大慈心)이란 복덕의 과보를 믿고 즐기어 나쁜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요, 한량없는 마음(無量慈心)이란 열반을 얻기 위하여 나쁜 마음을 제하는 것이다”라 하고 있다.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는 지혜와 자비를 대비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록 재주와 학문이 있더라도 계행(戒行)이 없는 이는 보배가 가득한 곳으로 인도해 주어도 따라가 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과 같고, 부지런하지만 지혜가 없는 이는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서 서쪽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과 같다… 계행과 지혜를 다 함께 갖추면 수레에 두 바퀴가 있는 것과 같고(行智具備 如車二輪),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은 새에게 양쪽 날개가 있는 것과 같은 것(自利利他 如鳥兩翼)이다.”

불교에서 지혜와 자비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지혜를 갖추면 자비행은 당연히 발현되고 자비행으로 수행하면 지혜는 어느덧 성취되는 것이다.

혜인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출전 : 불교신문 3841호/2024년10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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