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재칠시
박희택 : 열린아카데미행복원장
법보장경> 제6권에 나오는 무재칠시(無財七施)는 널리 회자되는 보시의 가르침이다. <불교성전>은 ‘가진 것이 없지만 베풀 수 있는 보살행’이란 제목으로 ‘재물의 손해 없이 큰 과보를 얻는’ 이 일곱 가지 보시에 대해 그 내용과 선한 과보를 빠짐없이 전해 준다. 무재칠시는 보시의 안목을 크게 넓힌 가르침이라 새삼 정성스럽게 독송하게 된다. (1)~(4)는 보시자의 직접적인 행위로 하는 보시라 하겠고, (5)~(7)는 보시자의 따뜻한 마음으로 하는 보시라 하겠다.
(1) 눈의 보시(眼施)는 언제나 좋은 눈으로 부모·스승·사문 등을 대하고 나쁜 눈으로 대하지 않는 보시이며, 청정한 눈을 얻고 미래에 천안(天眼)이나 불안(佛眼)을 얻는다. (2) 환한 얼굴과 즐거운 얼굴의 보시(和顔施)는 부모·스승·사문 등을 찌푸린 얼굴로 대하지 않는 보시이며, 단정한 얼굴을 얻고 미래에 순금색의 몸이 된다. (3) 말의 보시(言辭施)는 부모·스승·사문 등에게 부드러운 말을 쓰고 추악한 말을 쓰지 않는 보시이며, 말을 잘 하며 남들이 그 말을 믿고 받아주고 미래에 네 가지 말을 잘 하는 재주(四無碍辯)를 얻는다. (4) 몸의 보시(身施)는 부모·스승·사문 등을 보면 일어나 맞이해 예배하는 보시이며, 단정하고 장대하며 남의 공경을 받는 몸을 얻고 미래에 니그로다 나무와 같이 그 정수리를 보는 이가 없게 된다.
(5) 마음의 보시(心施)는 착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정성껏 공양하는 보시이며, 밝고 분명한 마음을 얻어 어리석지 않고 미래에 모든 것을 낱낱이 아는 지혜를 얻는다. (6) 자리의 보시(床座施)는 부모·스승·사문 등을 보면 자리를 펴 앉게 하고 나아가서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앉게 하는 보시이며, 일곱 가지 보배로 된 존귀한 자리를 얻고 미래에 사자법좌(獅子法座)를 얻는다. (7) 방이나 집의 보시(房舍施)는 부모·스승·사문 등으로 하여금 집 안에서 다니고 서며 앉고 눕게 하는 보시이며, 궁전이나 집을 얻고 미래에 온갖 선실(禪室)을 얻는다.
무재칠시의 이와 같은 경이로운 과보를 총섭하여 표현하면 ‘해탈’이 되겠다. 어느 하나 얽매인 것 없이 대자유를 한껏 구가하는 대해탈의 공덕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해탈이 다름 아닌 ‘중도’라고 혜해스님은 <돈오입도요문론> 결장(結章)에서 직설한 바 있다. 이 점을 명료히 이해하려면 스님께서 ‘요문론’ 단바라밀장에서 돈오(깨달음)의 문은 단바라밀(보시)로부터 들어가게 된다고 하면서, 보시는 두 가지 성품을 버리는 것이다(布施却二性)고 한 명철한 정의를 깊이 새겨봐야 한다.
‘각이성’이라 함은 있음과 없음의 성품, 사랑함과 미워함의 성품, 공(空)과 불공(不空)의 성품, 정(定)과 부정(不定)의 성품,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의 성품을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하여 두 가지 성품이 공(空)해짐이라고 이어서 법설하고 있다. 용수가 <중론> 관사제품에서 명변하였듯이 ‘공=중도’임을 상기한다면 보시는 중도로 이어지고, 중도는 해탈이기에 보시는 해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명료하디 명료한 불교의 중심철학을 여기 보시절에서 만나게 되니 경전을 읽는 기쁨이 충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무재칠시와 적극 상통하는 혜해스님의 각이성보시(却二性布施)의 법설도 불교성전에 편장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성자들은 이미 다 설시해 놓으셨고, 우리로 하여금 때에 맞게 알아차리기를 기다리고 계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출전 : 불교신문 3730호/2022년8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