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무소유
불교의 무소유는 현대사회와 동떨어진 사상 아닌가?
이정우 군법사ㆍ(예)육군 대령
A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무소유’가 과연 불교사상인가 하는 것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자어 소유(所有)는 물건이나 자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소유의 반대말이라고 알고 있는 무(無)소유는 그 어떠한 물질이라도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과연 불교의 사상일까요? <반야심경>에 보면 무소유와 같은 말로 ‘무소득(無所得)’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어떠한 정신적·물질적 이익도 가지지 말라는 것인데, 이것도 과연 불교의 사상일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인 욕심을 내어 뭔가를 자꾸 탐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소유하거나 소득을 남기려 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 반대말은 무소유나 무소득이 아니라 ‘베풂이나 보시·헌신’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무소유나 무소득으로 번역되기 전 원서에 나오는 단어의 뜻이 우리에게 올바른 의미로 전달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무소유라는 단어는 첫째, 산스크리트어 시마띠가(Simatiga)를 번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얻을 그 무엇도, 얻으려는 집착의 마음도 없는, 번뇌를 초월한 경지’를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무소유는 ‘없을 無 + 소유 所有(소유함이 없는 것)’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없을 無 + 바 所 + 있을 有(공이어서 실제로, 있을 바가 없다)’로 이해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원뜻과는 다르게 현대적 경제관념에 따라 소유의 유무로 잘못 사용했던 것입니다. 즉 불교적 용어인 소유라는 것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데 반하여,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알고 있었으니 불교의 사상과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소득도 마찬가지입니다. ‘없을 無 + 소득 所得(수입이 없는 것)’으로 알 것이 아니라 ‘없을 無 + 바 所 + 얻을 得(공이어서 실제로, 얻을 바가 없다)’로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 용어로 사용되기 훨씬 이전 불교적 용어를 경제적 용어로 맞춰 이해하려하니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무소유는 둘째, 아누빨라브디(Anupalabdhi)를 번역할 때도 쓰이는 말인데 이 또한 ‘공해서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 함’을 뜻합니다. 셋째, 아잘-락샤나(Asal-lakṣaṇa)도 무소유라고 하는데 앞의 두 단어와 맥을 같이해 ‘공하여 어떤 실체도 없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살펴볼 때, 무소유라는 잘못된 단어를 가지고 승가의 재산형성 유무를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 불경에서는 부처님과 승가에 기꺼이 전 재산을 기부하거나 승단 유지에 물심양면으로 기여하는 것을 큰 공덕으로 찬탄하고 있습니다. 초기승단의 가장 큰 후원그룹은 당시 정치인과 경제상인들이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현대 자본주의 사상과 부합하지 않다거나 현대인들과 괴리된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출전 : 불교신문3697호/2021년12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