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무주(無住)
논설위원·통도사 경학원 선행스님
일정한 대상 경계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무주(無住)다.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경구는 일체 모든 대상 경계에 대하여 집착 없이 망념을 일으키지 않고 청정한 마음을 발휘한다면 지혜로운 삶이 된다고 이른다. 이에 육바라밀을 수행정진 시에도 무주의 마음으로, 인색한 마음과 잘못됨 성내는 마음과 게으름 그리고 산란한 마음을 고치고 바로 세워 지혜를 증득한다고 했다.
그 모든 바라밀이 무외시(無畏施)로 회향하리라. 이는 두려움 없는 보시로써 자비한 마음이 바탕되어 차별심도 덜어져 너그럽고 넉넉하여 많은 이를 포용하는 마음은, 다른 이로 하여금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하는 보시다.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선순환(善循環)과 원형이론(元型理論)’ 곧 좋은 현상이 반복 되풀이되어 보편적인 심상(心象)으로 순환하여, 마침내 나의 진실함이 반드시 남들로부터 진실한 믿음으로 돌아온다는 정필부귀(貞必孚歸)의 교훈이겠다.
무주(無住)는 부동(不動) 곧 동요하지 않는 심상으로써 성인(聖人)의 경지인 부동지(不動地)로 통한다. 성인은 본래 위이부쟁(爲而不爭) 곧 만인을 위해주되 다투지 않는다고 했다. 다툼은 저마다의 관심사가 있어 저 나름의 의견들로 인해 갈등이 빚어져 송사로까지 이르기 마련이요. 승자와 패자를 불러오기에 불행한 일로써 목하 진실로 미더운 중재자를 요하는 세태다. 시급히 양시(兩是) 곧 양쪽의 장점을 드러내 잘못된 일은 풀로 진흙을 덮는 지혜와 시중(時中) 곧 시국에 계합하는 합의점을 도출시키는 대인의 출현을 희망해 본다.
누구나 대인이 될 수도 있고 소인이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갓 태어난 아이와 같이 어떠한 사사로움과 욕심 없는 영아의 모습을 한 대인이라면 해결되리라. 모쪼록 원효스님의 화쟁(和諍) 곧 온갖 혼란한 상황을 조정하는 지혜가 번뜩 발현되기를 기원한다.
[출전; 불교신문 3860호/2025년3월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