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생활

평상심이 道다

이원도 2025. 2. 3. 13:33

.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다

“대성이시여, 어떻게 예경하고, 내지 어떻게 회향해야 합니까?”

시험 볼 때 문제를 정확하게 읽지 않고 답을 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경전을 읽을 때도 청법자의 질문을 주목해야 한다. 보현보살이 열 가지 행원을 말하자 선재동자는 예경하는 법과 회향하는 법을 질문하는데, 그 질문에서 ‘내지’는 여덟 가지는 생략했음을 뜻한다. 생략한 질문은 찬탄하는 법, 공양하는 법, 참회하는 법, 함께 기뻐하는 법, 청법하는 법, 부처님께 오래 계실 것을 청하는 법,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법, 중생을 수순하는 법 등이다.

‘반야심경’(광본)에서 사리불이 한 질문은 “선남자 선여인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로 들어가는 수행을 하고자 하면 어떻게 닦아야 합니까?”이고, ‘금강경’에서 수보리가 한 질문은 “선남자 선여인이 진정한 보살이 되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반야심경’의 질문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방법’이고, ‘금강경’의 질문은 ‘보살행을 닦는 방법’이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에 비해 ‘인사하는 법’을 묻는 보현행원의 질문은 지나치게 평범한 것 같지 않은가?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항주자사로 부임한 후 그 고을에서 유명한 선승인 조과도림(鳥窠道林, 741~824)을 찾아 불법의 대의를 묻는다. 도림 선사의 답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일체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착한 공덕을 힘껏 행하며/ 자기의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법구경’ 183송) 이에 백거이가 “그 정도는 세 살 어린아이도 아는 내용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도림 선사는 “세 살 어린아이도 아는 것이지만, 여든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렵다네”라고 대답했다.

‘보현행원품’도 지극히 평범한 가르침이다. 인사 잘하고, 가급적 칭찬하고, 보시하면서,
살고, 먼저 사과하면서 살고, 질투하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가는 처세술 에 다름아니다. 그런 처세술을 통해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을 성취한다니 얼른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범함에 보현행원의 특징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평범하다는 것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요, 어디서든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요, 따로 시간을 내어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요, 특별히 배우거나 터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불교수행의 문제점은 수행이 일상과 너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불자들은 절에 오면 간절하게 기도하거나 용맹하게 정진하는 수행자가 되지만, 산문 밖을 나가면 불자인지 아닌지 구별되지 않는다. 선방에서는 용맹정진하지만, 해제하고 나면 수행의 자세를 잊어버리는 수행자도 많으며, 좌선 위주의 수행을 하는 이는 일상의 생산활동을 접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현행원의 평범한 수행은 일상 자체를 수행으로 만듦으로써 일상생활과 수행, 일과 수행, 놀이와 수행, 휴식과 수행을 분별하지 않는다.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은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라는 획기적인 수행론을 펼치면서, 도는 닦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도를 닦지 않으면서 얻는 방법, 그것이 바로 보현행원이다. 일상을 보현보살의 행원대로 산다면 닦지 않아도 도를 얻을 수 있으며, 수행한다고 의식하지 않고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불국토를 건설한다는 원대한 포부 없이도 불국토를 건설할 수 있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출전: 1763호 / 2025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