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가 내 마음에
온 우주가 마음 안에 들어와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괴롭고 마음 상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가 나에 대해 험담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거나, 시댁이나 처가 식구가 무리한 요구를 반복해서 해 오거나, 나와 분명히 했던 약속을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거짓말을 하는 거래처 사람을 만났을 때 뒤에서 한 방 맞은 듯 충격을 받으면서 마음이 괴롭게 된다. 현대사회에 와서는 핸드폰으로 보내온 피싱 문자와 누르지 말아야 하는 사기성 링크를 봤을 때 짜증이 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신공격의 말들을 온라인상에서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얼굴이 찌푸려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괴로운 일이 나에게 발생할 때마다 그 즉시 반조를 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지금 이 일이 어디서 일어나고 있나?”다. 내게 기분을 나쁘게 한 상대가 지금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보면 너무도 당연히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상대가 내 마음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 안에서 보이는 영상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 상대가 내 마음 밖에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 상대를 인지할 수 없게 된다. 왜냐면 내 마음 밖에 있는 것을 절대로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한번 확인해 보자. 지금 본인 마음 밖으로 나갈 수가 있는가? 마음 안에 어떤 문이 있어서 그 문을 열고 잠시라고 마음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 마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잠시라도 알 수가 있는가? 당연히 밖으로 나갈 수도 알 수도 없다. 만약에 마음 밖이라고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이지 않는가? 보고 듣고 아는 모든 일체의 일들은 다 자기 마음 안에서 떠오른 영상과 소리일 뿐이다.
우리 마음이 괴로울 때를 보면, 나를 힘들게 만드는 상대가 내 마음밖에 따로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렇기에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상대를 미워하거나 분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실상을 바라보면 어떤가? 실제로 상대가 내 마음을 떠나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마음밖에 그가 따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우리 마음이 알 수 없지 않을까? ‘나’를 포함한 눈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과 풍경은 마음이라는 공간 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풍경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내 마음 공간 안의 일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현대 불교를 중흥하신 경허 스님(1849-1912)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사실이 좀 더 분명해진다. 경허 스님께서는 동학사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을 처사가 “죽어서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이 없는 소가 돼라”고 하는 말을 듣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오도송을 지으셨는데 첫 구절을 보면 “콧구멍이 없다는 그 말을 듣고 삼천대천 세계가 내 집인 줄 깨달았네”다.
즉, 경허 스님은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우리 마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없다는 말로 들으신 것이다. 그 순간 삼천대천 세계 일체가 다 우리 마음 안의 일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생각으로는 나와 남을 나누어서 분별할 수 있지만, 생각 자체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첨가한 내용이지 본래 모습이 아니다. 실상은 마음이라는 한판에서 펼쳐 보이는 무상한 그림들과 소리일 뿐이다. 항상 여여하면서도 부동한 주인공은 마음이라는 한 판이지, 그 판 안에서 무상하게 등장했다 이내 사라지는 허망한 모습들이 아닌 것이다.
만약 자신을 몸 안에 갇혀 있는 작은 존재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에겐 위의 글이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몸이라고 한정하고,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마음이라고 또 한정했다. 그러면서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항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입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진리에 목말랐던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묻는다. 주입된 생각을 통해 세상을 보지 말고, 말을 모르는 순수한 아이처럼 세상을 봐 보라고. 생각을 첨가하기 이전부터 항상 존재해 왔던 실상을 생각에 의지하지 말고 그냥 느껴 보라고 말이다. 살아있지만 절대로 알 수 없는 이 하나가 눈앞에 분명하지 않는가?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출전 : 1732호 / 2024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