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침 바람 서늘한 바람에

이원도 2015. 6. 27. 07:53

 

아침 바람 서늘한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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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성이 오대산 상원사를 간다길래 주엽역까지 태워다 주고 동네 산책을 하였다. 아침 6시인데도 낮이 길어지긴 했는지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약간은 어두웠는데 지금은 대 낮이다. 아직은 여름이라도 땅이 덜 데워져 아침은 영상 19도 정도로 약간은 추위를 느낄 정도다. 우리 동네는 사방이 아파트로, 전형적인 농촌 동네가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부촌도 아닌 그저 그런 동네다. 공동 아파트라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운동한답시고 떠들어도 안 되고, 집안에서도 조심스럽게 다녀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아파트에서는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집만 해도 아랫집에서 항의 한 적도 없고, 우리 윗집에서도 아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도 약간 발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리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공사를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며칠 전에도 다른 지역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살인사건까지 발생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주거생활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층간 소음이 아닌가 한다. 물론 나라에서도 층간 소음을 규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그리 녹녹치가 않다. 우선 소음의 정도도 그렇고, 횟수나, 또 같은 크기의 소리라도 그 당시의 상황이나 당사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소음을 측정 하는 것도 각각의 아파트내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측정도 쉽지는 않다. 근본적인 대책이야 층간 간격을 더 넓혀 소음을 최소화하면 좋겠지만 공사비도 그렇고, 아무리 두꺼워도 소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먼저 각각의 당사자들이 나도 가해자이고 동시에 피해자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집안이라도 소음을 줄이는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더욱이 야간에는 더 조심해야 한다. 어느 교수님이 쓰신 글 중에 <내가 사는 아파트 위층에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가 얼마나 장난이 심한지 층간 소음이 보통이 아니어서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느 날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보니, 마침 그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래서 슬며시 다가가서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생활이며 친구들 사이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층간 소음이 들려도 그리 신경도 안 쓰이고 오히려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귀엽다는 생각부터 들기 시작하였다> 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한테는 냉정하지만, 특히 아는 사람한테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옛날에 우리나라 산업이 주로 농업일 때는 동네가 한 집안 같았으며 친척들도 대개 한 지역에 머물며 살아서 집안 간에 갈등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산업화가 되면서 주거생활도 아파트 문화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이웃 간에 왕래가 줄어들면서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만 하더라도 지금 아파트에 이사 온지가 9년이 되었지만, 우리 앞 집 사람들은 인사를 잘 하고 지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고 있고, 겨우 한 줄 통로의 사람들과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면 묵례만 할 정도이다. 그래서 사회생활의 기본은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불교에 입문하면서 가장 내 앞으로 다가온 구절은 육조 혜능 스님이 말씀 하신 게송인 <'보리자성(菩提自性)/ 본자청정(本自淸淨)하니 / 단용차심(但用此心)하면 / 직료성불(直了成佛) 하리라.> 이다. <우리들 마음은 본래 깨끗하니, 그 깨끗한 마음으로 살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구하거나 배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본래부터 있어 왔던 부처님을 찾아내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오늘 아침에 새삼스럽게 육조혜능스님의 게송이 떠오른 것은 모든 근본적인 문제들은 남의 탓이라기보다는 다 내안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

2015627일 아침 07, 현담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