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감성과 알음알이
붓다는 ‘대상을 아는 것[알음알이 하는 것]’이 마음이라고 간단히 정의하였다. 형색은 눈으로, 소리는 귀로, 냄새는 코로, 맛은 혀로, 촉감은 몸[피부]으로 안다. 오감이다. 오감을 앞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前五識]라 하고, 오감의 감각기관을 전오근(前五根)이라 한다. 붓다는 전오근이 감각할 수 없는 대상을 법경(法境)이라고 하였다. 감정이나 떠오르는 생각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감각대상들을 감지하는 감각기능을 의근[마노 mano]이라고 설정하고, 의근의 알음알이를 의식이라고 하였다[‘맛지마니까야’ 148 여섯씩 여섯 경].
눈[眼根]이 빛을 매개로 형색[色境]을 접촉하여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일어난다. 아비담마는 감각기관과 감성(感性) 물질을 구분하여, 감각기관은 미세한 감성을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고 설한다. 눈의 감성은 빛과 색깔을 받아들이고, 눈의 알음알이[안식]의 물질적인 토대와 문의 역할을 하는, 망막 안에 있는 ‘빛[형색]의 감각에 민감한 물질’이다.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 스님은 눈의 감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눈의 특징은 형상이나 색깔이 부딪쳐 오는 것에 만반의 준비가 된 4대의 감성이다. (중략) 여기서 눈이라고 하는 것은 검은 속눈썹으로 둘러싸여 있고, 검고 밝은 원반에 의해 변화하는 파란 연꽃잎을 닮은 것을 눈이라 부른다. 눈의 감성은 [여러 물질적인 현상이] 혼합된 전체 눈에서, 흰 동자에 의해 싸여 있고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이 비치는 곳인 검은 동자의 중간에 있다. 그것은 일곱 층의 솜에 뿌려진 기름처럼 눈의 일곱 층에 퍼진다. 그것은 받치고, 뭉치고, 익히고, 움직이는 기능을 하는 4대의 도움을 받는다[‘청정도론’ 14장].”
감각기관인 눈의 ‘검고 밝은 원반’은 눈동자의 홍체[검은 부분]와 흰자위막[공막, 흰 부분]이다. 홍체는 조리개 역할을 하여 동공을 조절한다. 눈 전체를 연꽃잎에 비유하고 ‘파란 연꽃잎을 닮은 것’을 눈이라고 했다. 동공이 조이고 펴지는 것을 연꽃이 밤낮에 따라 오므리고 펴는 것에 투사하였을까. 여기까지는 모양새를 어렵지 않게 따라가며 이해할 수 있다. 눈의 감성에 대한 설명이 어렵다. ‘동자의 중간’은 동공이다. 동공에 있는 ‘눈의 감성은 일곱 층에 퍼진다’는 것은 무엇을 묘사한 것일까. ‘형상이나 색깔이 부딪쳐 오는 것에 만반의 준비가 된 것은 눈’이며, ‘빛[형색]의 감각에 민감한 물질’, 즉 눈의 감성은 망막이다. 현대 뇌과학에서 망막은 10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고 본다[그림]. 그런데 망막의 가장 두꺼운 부분도 약 0.3m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에 7층이 있다고 아셨을까? 아니면 각막에서부터 시작하여 맨 뒤쪽의 공막까지 7층이라는 것일까?
망막에서는 밝은 점, 어두운 점, 색깔 점이 감지된다. 시야의 광경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전부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야의 실재하는 점들이 망막에 그대로 투사된다. 그것을 우리는 망막에 맺힌 상(像 image)이라 한다. 점을 감지하는 화소는 직경이 약 0.25mm인 원주모양이다. 광수용세포들이 어울리는 양상에 따라 ‘밝은 점’ ‘어두운 점’ 혹은 색깔 점을 감광한다. 시야의 광경이 점으로 해체되어 망막에 상을 맺은 것이다. 망막은 ‘점으로 된 스냅사진’을 시상으로 보내준다. 1초에 약 90개의 스냅사진. 이것이 망막이 하는 역할이다. 망막은 눈의 알음알이의 문이며 토대가 된다.
아비담마는 눈의 감성물질이 형색[빛]과 부딪히면 눈의 알음알이, 즉 안식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눈의 감성 물질과 형색은 서로 부딪힐 뿐 알음알이는 뇌에서 일어나는데, 뇌는 온전히 생략됐다. 형색과 눈의 감성이 부딪혀 생긴 ‘점으로 된 스냅사진’이 시상으로 보내지면 시상이 대뇌 1차 시각피질로 전달한다. 안식의 시작이다. 그것은 해마를 거쳐 전전두엽에서 끝난다.
눈은 안문(眼門)이고, 뇌는 의문(意門)이다. 안문은 형색에 대한 이미지를 의문 앞에 가져다 놓는 역할을 한다. 의문 앞에 온 이미지는 의문을 두드린다. 노크 소리를 들은 의근은 의문을 열어준다[오문전향, 네 번째 심찰나]. 이제 의문인식 과정이 시작된다. 이처럼 눈의 알음알이는 안문과 의문을 통과하는 혼합문 인식과정이다. 즉, 형색은 안문과 의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1차 시각피질이 물질적인 의문이고, 부딪히는 바왕가, 흔들리는 바왕가, 끊어지는 바왕가가 정신적인 의문이다. 의문 안으로 들어오면 점들은 모여서 선을 만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점으로 된 스냅사진’이 ‘선으로 된 스케치 사진’이 된다. 시각 신호처리 과정이 더 진행되면서 모양이 완성되고, 색깔, 움직임 등에 대한 분석이 일어난다. 모양과 색깔은 해마가 있는 측두엽으로 가면서 완성되고, 움직임은 뇌의 위쪽인 두정엽으로 가면서 파악된다. 완성된 모양새와 움직임은 전전두엽으로 들어가 의식으로 들어온다. 눈의 알음알이가 완성되었다.
결론적으로 눈의 알음알이는 망막 → 시상 → 1차, 2차, 3차 시각피질 → 해마 → 전전두엽을 통과하는 뇌신경신호처리 과정이며, 전전두엽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의근이 그 신호를 포섭하면[오문전향], 안식이 생성되고, 생성된 안식을 다시 의근이 전전두엽으로 받아들인다. 전전두엽에서는 의식, 즉 마노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눈의 알음알이는 형색에 대한 뇌활성이며, 의근에 포섭되어 의식에 들어오는 찰나에 있는 단 1심찰나 동안의 마음이다. 안식은 의식에 들어온 알음알이일까? 의식에 들어왔다면 아마도 허깨비 하나가 순식간[1심찰나]에 나타났다 사라진 정도일 것이다. 허깨비를 의근이 받아들여 조사하고, 그 성질을 결정한 후 음미[속행]해야 온전히 의식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형상은 안문을 통과하고, 이어서 ‘바왕가 → 예비·변환 → 입력·수용 → 조사·결정 → 속행 → 여운’이라는 인식통로를 거친다고 아비담마는 설명한다. 전체 과정이 17심찰나(약0.23초) 걸리고, 그동안 17개의 마음이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면서 형상을 인식한다. 인식통로를 통과하는 형상은 마치 말을 몰고 내달리는 서부의 사나이같이 순식간이다. 망막에서부터 4심찰나(4/75초 = 0.05초)만에 뇌의 후두부에 있는 1차 시각피질로 갔다가 다시 전전두엽 앞에까지 왔다! 그 전체 경로를 17심찰나[0.23초]만에 내달린다.
한 마리의 말[형상]이 내달리는 것이 아니다. 마치 경마장에서 여러 말이 동시에 우르르 달려가는 것과 흡사하다. 망막에는 여러 가지의 상이 맺히고 이들은 각자 안식 인식통로를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문전향하는 의근은 한 찰나에 하나의 말에만 주의를 보낸다. 한 찰나에 하나의 대상만 포섭하는 것이다. 주의가 보내진 말만 완전한 상[眼識]을 맺고 다음 단계[받아들임]로 나아간다. 주의맹(attentional blink) 현상은 하나의 대상에 주의를 주면 그 대상에 대한 인식과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으면 다음 대상이 인식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비담마도 그렇게 설명한다. 수행에서 체험한 대단한 인식능력이다. 아마도 인식에 필요한 뇌의 자원에 한정이 있어 그럴 것이라고 해석한다.
대상을 안다는 것은 ‘아는 주체’가 있어서 ‘객체’, 즉 인식대상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는 아는 주체가 따로 없다고 본다. 마음 자체가 대상을 아는 행위자이다. 마음들은 찰나생 찰나멸 하면서 흘러간다. 불변하는 자아가 따로 대상을 인식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아는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73호 / 2023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