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과 정서
불성과 정서조절
여정 스님 ㅡ 동국대 강사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 정서를 경험하면서 보낸다. 기뻤다가 우울했다가 흥분했다가 짜증을 냈다가 한다. 본인의 감정 에너지를 매번 유용하고 알맞게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좌절하고 어떨 때는 너무 과하게 내놓고선 온종일 찝찝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 ‘정서’라는 것이 자칫하면 넘치게 표현되거나 부족해서 우리의 삶을 힘겹게 만들기도 한다. 다행히 불성(佛性)의 가르침에는 균형감 있는 정서 유지에 도움 주는 요인이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즉 우리 모두에게는 부처님(佛)과 같은 성품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를 통해 도움 받을 수 있다.
<불성론>에는 ‘일체중생 실유불성’에 내포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때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다섯 유형의 부정성은 제거되고, 또 다섯 유형의 긍정성은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먼저 줄여 나갈 수 있는 부정적인 정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자.
줄일 수 있는 부정적 정서 다섯 가지
첫째는 열등의식이다. 누가 봐도 부러울 만큼의 스펙, 능력, 재력을 지녔음에도 자기 열등의식을 토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순간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더욱이 소위 ‘엄친아’로 불리는데도 열등감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열등감은 개인에게 주어진 객관적 상황보다도 자기 인식 방식의 문제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아무리 명백한 엄친아 일지라도 자기개념이 부정적이라면 열등감에 빠지게 된다. ‘불성’은 지금 자신이 불(佛)과 동격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주입시켜 주면서 조금씩 열등감에서 벗어나도록 이끈다.
둘째, 교만이 줄어든다. 자신에게만 부처님 같은 성품이 있지 않고 다른 사람 모두에게도 있다는 인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혼자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이런 점이 저 사람은 저런 수승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대가 달리 보이게 된다. 마냥 교만할 수 없을 것이다. 교만과 유사한 과시, 독단, 독선 등의 정서들도 줄어들 수 있다.
셋째, 집착하는 습성을 조절해 줄 수도 있다. 집착은 모든 것이 조건적으로 일어났다가 조건적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부족이다. 하지만 불성에 대한 바른 이해는 모든 것은 인연과 조건에 의해 작용한다는 인식을 강화시켜 주면서 집착이 무모하다는 생각을 내게 해준다. 동시에 집착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는 터널시야, 고정관념, 경직된 사고, 편견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단견에 치우치는 성향 제어도 가능하다. 이 단견은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작용한다는 연기(緣起)의 이치를 알지 못할 때 생기는 견해이다. 이렇게 되면 뭘 해도 의욕감 없고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어 한다. 쉽게 절망하면서 허무함, 우울, 무기력 등과 같이 동기부여를 저해하는 정서를 자주 경험한다. 연기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불성의 가르침’은 이런 단견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준다.
다섯째, 지나친 자기애적 성향도 줄여준다. 공주병, 왕자병은 자기애의 전형으로 보인다. 자기애는 자신의 성공, 권력, 아름다움에 끝없는 욕구를 내며 모든 초점이 오르지 자신에게 맞춰져 있다.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마음이 강하고 고립감으로 외로워한다. 배타적이라서 대인관계도 원만하기 어렵다. 이 또한 연기에 대한 이해 부족과 관련 있는 모습이므로 불성의 이치를 알아감으로써 줄여 나갈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불성에 대한 이해와 믿음은 다양한 긍정정서 계발에도 도움 된다. 첫째. 부지런히 노력하려는 습성을 키워준다. 자신에게 불성이 있다는 생각은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될 수 있다는 내적 의지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밑 빠진 독이라고 생각되면 누구도 끈기 있게 하지 않겠지만, 결과가 보장될 때면 적극성을 보이며 끈기 있는 노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자기통제력도 커질 수 있겠다.
둘째, 타인에 대한 공경심이 잘 일어난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굳게 믿으면 나타나는 변화이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 차별심을 내지 않고 모두를 존경할 만한 대상으로 각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꽤 많은 사건 사고의 발단을 보면 상대로부터 무시당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무시당하고 멸시받고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디에도 업신여기며 가볍게 대해도 괜찮을 사람은 없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상대가 부처님 같은 훌륭한 성품을 지닌 분이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경하는 태도가 나온다. 더욱이 존중, 공경, 평등, 예의 등과 같이 사람을 대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를 길러줄 수 있다.
셋째. 지혜력이 증장된다. 가끔씩 이런 상황에 어쩌면 저런 반응을 보일까 싶을 만큼 상황 해석을 왜곡시키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자기 좋을대로 생각하고 자기식대로 해석해 버린다. 불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우리 삶이 펼쳐지는 이치를 여실하게 인식하는 힘을 키워준다. 지나친 욕구에 이끌려서 집착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인과의 원리에서, 연기적 작용에 따라 경험을 해석하는 안목이 생긴다.
넷째. 심적 안정감과 평온함 유지에도 도움 줄 수 있다. 자신에게 불성이 있다는 확신 자체만으로 든든함을 느끼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받게 된다. 의지처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불성을 활성화시키려는 자기 노력이 되는 과정 속에서 안정감이 도모되기도 한다. 이 때 심적으로 중심이 잡히면서 번다한 생각, 소소한 갈등사항들, 이런저런 고심꺼리에 마음이 이리저리 요동치지 않고 내려놓는 과감함이 생긴다. 자신에게 불성이 있다는 자기 암시가 안정되고 평온한 기운이 형성되는 패턴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다섯째, 우리 내면의 불성은 자비의 모습으로도 드러난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라는 개별의식보다 ‘우리는 하나’라는 연결의식에 마음이 더 자주 머물 수 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지며 주변을 돌아다보는 여유도 생긴다. 이런 심경은 모두의 안녕을 위한 직접적인 실천행을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자비’와 유사한 정서로 보이는 공감, 친절, 감사, 평등, 사랑 등의 모습도 함께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일체중생 실유불성’이 전하는 이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 마음이 견고하다면 꽤 광범위한 영역의 정서를 조절하는데 도움 받을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자주 통상적으로 일으키는 부정적인 정서들, 그리고 누구라도 계발할 때면 인격적 성숙을 보장해주는 긍정적 정서들을 유의미하게 조절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만 멈춰서 지금 자신의 정서는 어떤 상태에 주로 머무르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권해본다. 과잉되어서 조금은 줄이면 좋겠다는 싶은 영역은 있지 않은지, 반대로 조금은 키워나가면 좋겠다 싶은 정서 영역은 없는지 체크해 보자. 불성의 가르침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고한 믿음을 통해 보다 균형 잡힌 정서를 유지하는데 도움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국대 강사 여정스님
[출전 : 불교신문 3757호/2023년2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