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세월 유감

이원도 2014. 11. 20. 19:14

 

 

 

 

 

 

2014.11.15. 강화 선두리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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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유감

 

 

      오늘 의정부에 업무 차 나갔다. 며칠 동안 아침에는 꽤 쌀쌀하더니만 오늘은 온화한 날씨로 돌아왔다. 이제 11월도 중반을 넘어 가을의 끝자락에 서게 되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거침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세상사(世上事) 무상(無常)함을 다시한번 각인 시켜본다. 11시 쯤 되어서 어느 사무실에 들렀더니 마침 예전에 나와 같이 근무하였던 선배님이 와 계셨다. 나와는 70년대 말에 같이 한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였고 한 집에 살면서 1년여를 동고동락 하면서 살았었다. 그 분은 나보다는 10살 연배여서 그 당시에는 노총각이었고 나는 새총각이었다. 아침, , 저녁, 휴일 등에도 늘 같이 생활하였었다. 지난 일이었지만 돈 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늘 마시며 놀러 다니며 즐겁게 생활하였다. 그동안은 간간이 소식도 전해 들으면서 살았지만 직접 만난 것은 실로 몇 년 만이다. 왕년에 그 선배님은 자타가 알아주는 마당발이었으며 술에도 일가견이 있어 절대로 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몇 년 전에 중풍을 맞아 다행히 회복되었으나 아직도 약간은 어눌하고 부자유스러웠다.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으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랜만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사겠다고 하였다. 인근에 있는 갈비탕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선배님은 슬하에 딸, 아들 한 명씩 두었고 딸은 시집간 걸로 아는데 아들의 소식은 잘 몰랐다. 물어보고 싶었으나 왠지 내키지가 않았다. 선배님이 우리 집 사정을 묻길 래 나는 딸 아들을 두고 직장 잡아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서로 자주 연락을 하자면서 헤어졌다. 나는 의정부에서 업무를 보고 일산으로 오는 길에 마침 잘 아는 후배가 있는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반갑게 인사하고 차 한잔 나누며 오후의 따사로운 늦가을을 느끼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우연히 아까 만났던 선배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이 3년 전 쯤에 죽었다고 하였다. 공부를 잘 해서 대학을 마치고 대기업에 잠깐 다니다가 다시 의대에 진학하여 인턴을 마치고 레지던트 과정에서 제주도에 놀러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며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면서 순간적으로 너무 안타까웠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그 심정은 아마도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며 세상이 종말을 고하는 것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지난봄에 있었던 세월의 참사의 유가족 못지않은 마음일 것이며, 아직도 가슴에 묻어두며 소리 없이 흐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도 그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이며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일산으로 오는 내내 마음에 걸리며 늘 지족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dukkha)이라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고()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허무하다고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고 하셨다. 부처님이 버리라고 한 것은 이치에 어긋난 무명(無明)과 습()에 집착하는 삿된 나의 욕망을 나로 착각하지 말고 버리라고 한 것이지 선근(善根)을 닦고 이치를 찾는 밝은 나를 직접적으로 버려야 한다거나 나의 실체가 없는 아무 것도 없는 무아(無我)라고 하신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을 고해(苦海)라고도 하지만 그 고해를 부처님이 설하신 8가지의 바른 수행방법, 즉 팔정도를 수행하면서 살아가면 범부로서 완전한 행복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당사자가 아니면 머리로만 이해가 되겠지만, 그래도 다사다난한 세상사에서 누구나 희로애락을 다양하게 겪으며 살아가는 인생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그 길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극복하며 살아가느냐가 과제일 것이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고 거기에 따라 즐거움과 괴로움, 웃음과 슬픔이 교차할 것이다. 마음을 쓴다고 하여 해결되지 않을 바에는 거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다양하게 얽혀 있는 세상의 인연들을 조화롭게 이루면서 살아가자

 

 

세상사에서 조화로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살다보면 원망도 생기고, 노여움도 나며,

발끈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도 생긴다.

순간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버럭 성질을

내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대인관계나 일처리에 조화로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이용휴의나를 찾아가는 길중에서 >

 

 

20141120일 저녁 현담합장